아주 개인적인 한국영화 감상노트

'신세계 (2013년)' 줄거리, 결말 및 감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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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2013년)' 줄거리, 결말 및 감상

행복휘파람_70 2026. 6. 6. 22:45

감독: 박훈정

출연: 이정재, 황정민, 최민식, 박성웅

개봉: 2013.2

 

 

프롤로그.

영화의 시작은 한 사내가 의자에 묶여 있는 장면이다. 온통 피투성이인 남자는 한 눈에도 모진 폭행과 고문을 당한 모습이다. 그런 그의 앞에 서있는 남자들. 남자들의 수장은 이자성(이정재 분)으로, 그는 자신이 속한 골드문이란 조직의 1인자가 검찰에 제보한 배신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그들은 고문하던 남자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바다에 수장시킨다.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각, 화면을 가득 채운 짙은 푸른 빛의 바다를 배경으로 바지선 위에 선 이자성은 멀리 시선을 던진다. 방금 한 남자의 목숨을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뜻 봐서는 무신경한 듯, 또 어떻게 보면 마음이 복잡한 듯한 표정이다.

 

서막: 골드문 1인자의 죽음과 '신세계 프로젝트'

횡령과 탈세 등의 혐의로 검찰에 조사를 받던 '골드문'1인자 석동출 회장이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 그날 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다. 석회장이 중태에 빠진 사이 골드문의 간부들이 모이게 되고, 중국에 있던 골드문 2인자이면서 화교계 조직 출신인 정청(황정민 분) 역시 급히 귀국한다.

 

마중나온 이자성과 공항에서 만난 정청. 정청은 이자성에게 “어이, 브라더 라고 부르며 구수한 사투리와 걸죽한 욕설을 뒤섞어가며 장난을 걸고, 이자성은 대수롭지 않게 툭툭거리는 태도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조직의 서열이 아니라 친형제 이상의 정으로 끈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청이 차 안에서 선물로 건네준 시계를 받은 이자성이 “이거 짝퉁이구만 뭘…. 이런 거 좀 사오지 마요, 좀 하며 타박하자 정청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더니 이내 “티 나냐?” 하는 능청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응급수술이 벌어지고 있는 수술실 앞. 대기석 가장 앞줄에 정청과 그의 라이벌인 이중구(박성웅 분)가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어 앙숙인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석동출 회장은 끝내 숨을 거두게 되고 병원에 모인 골드문의 간부들은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 낭패한 표정,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표정 등 다양한 반응들을 보인다. 이자성은 자리에 앉지 않고 뒤에 서있는 채로 복잡한 생각에 빠진다.

 

호화롭게 치러지는 장례식장. 온통 검은 양복 차림의 조직원들로 가득한 그 곳을 몰래 촬영하던 경찰 형사팀이 이중구 일당에게 발각된다. 이중구는 카메라를 빼앗아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형사들을 모욕한다. 이때 수사기획과 강형철 과장(최민식 분)이 나타나 이중구를 말 몇 마디로 꼼짝 못하게 하고 물러서게 만든다.

 

한편, 경찰청에서는 경찰청장과 고병엽 국장 간의 은밀한 브리핑이 진행중이다. 고 국장은 강 과장의 상급자이자 친구이다. 그들은 몇 개의 폭력조직을 통합한 뒤 탄생한 골드문이 8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영향력을 키워가자 골드문의 후계구도에 직접 개입해 통제하려는 비밀작전, 일명 '신세계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이 장면에서 고 국장의 잔혹함이 보이는데, 브리핑을 받은 경찰청장이 “야, 니들. 자신있냐? 만에 하나 잘못되면?” 하고 묻자 천연덕스럽게 “뭐, 다 죽기 밖에 더하겠습니까.”라고 대답한다. 위험한 작전으로 죽음을 각오한 듯 들리지만 가만히 곱씹어 보면 그런 의미가 아니다. “죽기 밖에 더하겠습니까?” 가 아니라 “ 죽기 밖에 더하겠습니까?”라고 답한 걸 보면 2인자든 3인자든 후계 경쟁에 관여한  골드문의 핵심 간부들의 죽음을 이야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잔혹한 자들을 상대하는 경찰 수뇌부의 더욱 잔혹한 본 모습이다. 이 장면이 그렇게 거슬리지 않는 건, 어쩌면 영화를 보는 우리가 친숙한 공권력을 바라는 한편으로 일반인은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악에 대해선 일말의 동정심 없이 철퇴를 가할 수 있는 강력한 공권력을 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자성의 딜레마: 숨 막히는 삶

이자성은 편한 모습으로 개인 바둑선생(송지효 분)과 바둑을 두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이자성이 말하는 내용이 심상찮다. 곧 이사회가 열릴 것이며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생활도 끝이라고. 그리고 이사회에 참석하는 지방의 이사들 명단까지 모두 웹하드에 올려 놓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자성은 바둑선생의 태도에서 또다른 임무가 있음을 알아챈다.

 

사실 이자성은 강 과장의 작전에 의해 골드문에 잠입하여 위장신분으로 활동중인 경찰이었다. 바둑선생 역시 경찰이며 이자성에게 임무를 전달하고, 이자성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경찰 조직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중인 중이었다. 이자성은 8년째 정청과 함께 조직의 밑바닥부터 시작해 성장해왔고, 이제는 정청이 가장 신뢰하는 심복이자 형제 같은 사이가 된 것이다.

 

경찰이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잠입하여 활동하는 영화적 설정은 낯설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장르가 떠오르는 작품으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1992년)’과 홍콩영화 ‘무간도(2002년)’ 시리즈가 있다. 두 작품 모두 명작이다. ‘저수지의 개들’의 내용은 갱스터 중에 숨어있는 경찰의 정체가 누구인가를 찾는 수수께끼를 따라간다. 정체가 나중에 밝혀지는 전형적인 구조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날 것 같은 연출감각과 함께 그 수수께끼가 일품인 갱스터 스릴러 무비라고 할까. 반면 ‘무간도’는 범죄조직에 잠입한 경찰과 경찰조직에 잠입한 갱스터의 정체를 먼저 밝힌다. 그러면서 뒤바뀐 두 운명의 심리적 갈등과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고 비극적인 결말로 영화의 여운을 남겼다. 이 외에도 위장잠입 경찰 소재의 영화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신세계’ 역시 위 두 작품에 절대 꿀리지 않는다. 정체를 일찌감치 밝히고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점에선 ‘무간도’와 유사하지만 결말은 완전히 다른 충격이다. 그리고 그 충격에 이르는 심리적 궤적이 충분히 공감될 수 있게 하는 스토리까지 갖췄다. 그렇다. 주연배우의 유명세도 있고 감각적인 연출, 참신한 소재도 중요하지만 결국 영화의 힘은 ‘스토리’에 있는 것 아니겠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온 이자성은 강 과장의 아지트인 폐공장의 실내낚시터로 찾아간다. 그는 석 회장이 죽었으니 이제 위장임무를 끝내고 해외로 보내주거나 경찰 신분으로 복귀시켜 달라고 강 과장에게 애원한다.

 

“약속했잖아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강 과장은 이자성의 정체를 골드문에 흘릴 수도 있다는 협박과 함께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말로 그를 계속해서 활동하게 한다. 그러면서 강 과장이 이자성의 임신한 아내를 위해 남자아이용 아기 선물을 주자 이자성은 자신까지 감시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자성은 자신을 협박할 뿐만 아니라 감시까지 하고 있는 강 과장에게 극심한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골드문의 후계 전쟁: 정청 vs 이중구

골드문의 이사들은 비어 있는 1인자 자리를 누가 잇느냐를 두고 고민을 한다. 유력한 후계자 후보인 이중구와 정청의 팽팽한 기싸움 속에 이사들은 조만간 예정된 다음 임시 이사회에서 결정을 내리기로 한다. 정청은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오느라 마무리짓지 못했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자성에게 뒷일을 부탁한다.

 

그러는 사이 경찰은 바쁘게 작전을 검토한다. 골드문의 내부 후계다툼을 이용하는 작전이고 이 작전의 성공을 위해선 내부에 잠입한 이자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자성의 정체를 알고 있는 고 국장이 이자성의 감정 상태를 우려하자 강 과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연히 안괜찮지. 너라면 괜찮겠냐? 하지만 지가 뭘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하지만 이자성은 강 과장의 생각과 달리 심각한 불안과 동요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 명령에 따라 이자성은 바둑선생에게 이중구의 범죄혐의 증거자료를 넘기며 어쩔 계획인지 묻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자신은 그냥 장기판의 말처럼 상부에서 시키는대로만 해야 한다는 것에 이자성의 분노와 무력감은 점점 깊어간다.

 

“나도 경찰이잖아. 너희들하고 같은 편! 아니야?”

 

한편, 이중구는 다른 이사들을 모아 오싹한 모습으로 후계 경쟁에서 자신의 편을 들도록 공포감을 조성한다. 노회한 이사들이 공포심에 움츠려 들면서도 대가를 기대하자 이중구가 던진 말은 이 영화의 명대사중 하나다. 이 영화에서 배우 박성웅이 살벌한 분위기의 이중구 캐릭터를 가장 잘 살린 장면이기도 하다:

 

“살려는 드릴께”

 

 

정청이 중국으로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부하들의 배웅을 받으면서도 정청은 여느 때처럼 끊임없이 이자성에게 장난을 건다. 하지만 이자성은 무슨 일인지 잔뜩 긴장해 있고 정청의 장난에 짜증섞인 반응을 보인다. 정청은 그런 이자성을 의아해하면서 출국장에 들어선다.

 

하지만 정청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에 경찰들에게 제지를 당하고 곧이어 강 과장과 마주한다. 강 과장은 정청에게 이중구와 연관된 골드문의 범죄자료를 건네는데 정청은 경쟁자인 이중구를 경찰이 대신 제거해 주겠다는 것이냐며 코웃음친다. 정청은 강 과장과의 만남을 통해 골드문에 여전히 경찰의 프락치들이 있다는 심증을 강하게 갖게 된다.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정청은 부하에게 강 과장과 경찰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최고의 해커들을 동원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다음 날 부하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이중구는 강 과장이 이끄는 형사대에 의해 전격 체포된다. 숨가쁜 상황이 진행되는 줄 꿈에도 모르는 이자성은 임신한 아내와 병원을 다녀오던 차 안에서 “우리 외국 나가서 살까?” 라고 말한다. 갑작스런 이자성의 말에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는데 그 순간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잠시 후 이자성의 아내가 홀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놀랍게도 통화상대는 강 과장이었다. 강 과장은 그녀의 아버지를 약점삼아 그녀를 이자성과 결혼시키고 꾸준히 동향보고를 받아왔던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 이중구의 체포 소식을 들은 정청은 급히 한국으로 향하고 아울러 그가 따로 부른 연변 출신 킬러들도 한국에 들어온다. 정청은 곧바로 이중구를 면회하지만 이중구는 자신이 구속된 원인이 정청이라고 확신하며 격렬한 분노를 보인다. 정청은 이어 강 과장을 만나 거액의 돈으로 회유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정청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비내리는 그 날 밤, 이자성의 바둑선생은 정청이 불러온 연변 킬러의 습격을 받게 되고 곧바로 강 과장에게 정체가 노출되었음을  알린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자성은 정청의 연락을 받고 인천 부둣가의 창고로 향한다. 달리는 차 안의 이자성과 인천 부둣가 앞에서 홀로 술마시는 정청 그리고 텅 빈 사무실에서 깊이 생각에 잠긴 강 과장, 세 사람의 복잡한 표정이 화면을 빠르게 지나간다.

 

한번도 사전 연락 없이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는 정청인지라 이자성은 알 수 없는 불안을 안고 창고로 향한다. 그곳에서 정청은 피투성이의 바둑선생을 보여주며 조직에 잠입한 또다른 경찰이 있다고 알려준다. 정체가 발각된 것인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이자성은 극도의 불안함을 보이는데 정청은 갑작스레 이자성의 곁에 서있던 심복을 공격하여 처참하게 살해한다. 이자성의 심복 역시 골드문에 잠입한 위장신분의 경찰이었고 그것은 이자성조차도 모르고 있던 것이다. 이어 바둑선생조차 살해하려고 킬러들이 움직이자 이자성은 순식간에 킬러의 총을 빼앗아 바둑선생을 직접 사살한다. 고통을 덜어주려는 뜻을 알아차린 바둑선생도 기꺼이 이자성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정청은 이자성이 창고에 도착한 순간부터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이자성의 반응을 살핀다. 이자성이 말을 더듬고 진땀을 흘리며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며 정청은 평소와 똑같이 대하지만 이자성을 쳐다보는 눈은 독사처럼 매섭다. 이자성은 자신의 정체도 발각되었음을 직감하지만, 정청은 두 사람의 처형으로 상황을 정리한다. 처참한 죽음을 당한 두 사람은 영화 오프닝 때처럼 푸른 어둠 속 바다에 수장된다. 그리고 그들이 수장된 바다 위로 그들의 사진과 경찰 인사기록카드가 갈갈이 찢긴 채 버려진다.

 

이자성의 부하들이 푸른 어둠속에서 죽은 두 경찰의 사진과 인사기록카드를 갈갈이 찢어 바다에 뿌리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흩뿌렸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풍습 하나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바로 장례 행렬에 종이돈을 뿌리는 행위이다.  종이로 만든 가짜 돈이나 아니면 아예 하얀 종이를 돈처럼 뿌리는 풍습이다. 죽은 자가 저승으로 가는 노잣돈이기도 하고, 저승으로 가는 길을 지키는 귀신에 대한 사례이기도 하고, 죽은 자의 넋이 길을 잃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례뿐 아니라 무속에서도 종이를 뿌리는 행위가 많는데 역시 죽은 자를 달래는 의미로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보편적 풍습이다. 죽은 자를 달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문명에서도 있지 않은가. 부장품이 그렇고 순장이 그렇고 노잣돈이 그렇다. 이 장면이 감독의 의도된 장면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동료를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리고 자신도 발각되었을지 모른다는 불안함 등 혼란스러운 이자성의 시각으로 죽은 이들의 넋을 달래는 심정이 반영된 것 같아 인상적이다.

 

전쟁의 시작

그 시각 강 과장은 이중구를 면회한다. 강 과장이 혼자 있던 사무실은 이중구가 수감되어 있는 구치소의 면회실이었다. 강 과장은 골드문이 중국 화교계 정청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며 이중구를 자극한다. 그러면서 이중구의 체포가 정청의 신고가 원인이었던 것처럼 한다. 다음날 이중구는 구치소로 면회온 자신의 심복을 통해 정청의 배신을 알리며 부하들을 동원할 것을 지시한다.

 

영화 내내 강 과장은 오직 작전의 성공만을 위해 부하 경찰을 사지에 밀어넣고 구출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냉혈한으로 비친다. 심지어는 마약범의 딸을 약점잡아 이자성과 결혼시키고 감시자로 활용하는 등 부하조차도 완전히 믿지 않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강 과장은 이중구를 구속하고 정청을 1인자에 앉힌 뒤 경찰의 도움을 약점삼아 골드문을 통제하겠다는 최초의 계획을 포기한다. 그 대신 이중구와 정청의 전면전을 유도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작전 변경이다. 바로 위장잠입 경찰 두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 이면에 강 과장의 거대한 분노가 읽힌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였지만 고 국장과 술자리 장면에서도 얼핏 보이듯 그 역시 왜 괴로움이 없겠는가.

 

강 과장은 골드문에 흡수된 이후 명목상의 서열에만 머물러 있던 또다른 인물 장수기를 이자성과 연결한다. 장수기를 허수아비 회장으로 세우고 이자성에게 골드문을 접수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자성은 분노한다. 강 과장의 멱살을 잡고 처음으로 반말로 분노를 쏟아내던 이자성은 거의 울먹이기 직전이다.

 

“끝이라고 했잖아!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아!”

“과장님, 나 이거 못합니다. 과장님, 나랑 약속했잖아요.”

 

강 과장은 이것이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며 그것이 이자성도 무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중국 해커에 의해 경찰청 데이터베이스가 해킹당한 사실, 이자성을 비롯한 잠입경찰들의 자료가 모두 유출되었고 그걸 정청이 알고 있다는 사실도 얘기한다. 강 과장은 이어 그 때문에 모든 자료가 파기되었고, 경찰 이자성의 자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직 강 과장과 고 국장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망연자실하는 이자성. 돌아갈 곳을 잃은 이자성의 눈빛은 쉴새없이 떨린다.

 

피로 물든 엘리베이터

이중구의 부하들은 정청이 지하주차장으로 소수 인원만 데리고 나온 때를 노려 습격을 감행한다. 칼과 야구방망이로 무장하고 매복하고 있던 적들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며, 정청은 뒤늦게 달려온 부하들 도움으로 엘리베이터 문까지 피하게 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또다른 매복지였으며 정청은 혼자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리고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청은 수많은 적들을 홀로 상대하며 모두 쓰러뜨리지만 그 자신도 치명상을 입는다.

 

이중구의 또다른 부하들은 정청의 2인자인 이자성의 집도 습격하지만 잠복하고 있던 경찰들로 인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습격으로 이자성의 아내는 큰 충격을 받고 아이를 유산하고 만다.

 

병원 중환자실. 산소호흡기를 낀 정청은 위독한 상태이고 이자성은 침통한 표정으로 그의 옆을 지킨다. 의식을 되찾은 정청은 그 상황에서도 이자성을 걱정한다.

 

“어이 브라더, 너 많이 힘들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에 대한 실망과 분노, 동료들의 죽음, 신분 노출에 따른 공포, 새로운 작전에 대한 충격 등으로 극심한 불안상태인 이자성은 임무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신뢰하게 된 정청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을 하니 울컥한다. 동요하는 이자성을 가만히 지켜보며 정청은 힘들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그러지 말고, 이제 그만 선택해라. 형 말 들어, 이 병신아."

"독하게 굴어... 그래야 네가 살아..."

 

정청은 이자성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을 끝내 밝히지 않았고, 오직 이자성을 걱정하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후 이자성은 정청의 사무실에서 이자성은 정청이 남긴 선물을 발견한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가 적힌 경찰청 인사기록 카드와 정청이 이자성을 위해 준비해둔 명품 시계였다. 자신을 작전도구로만 취급하던 경찰과 달리,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정체를 숨겨준 범죄자 형의 진심을 확인한 이자성은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결말을 미리 알고 싶지 않으신 분은 여기서 읽기를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결말: 1인자가 되어 신세계에 발을 들이다

이중구는 증거불충분으로 구속에서 풀려나지만 마중나온 부하가 한 명도 보이질 않자 헛웃음을 짓는다. 이자성은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장수기의 함정에 빠져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자성은 미리 예상이라도 한듯 덤덤한 표정을 잃지 않는다.

 

이중구는 자신이 아지트로 사용하던 신축빌딩 공사장에 홀로 찾아왔지만 이곳에선 이미 이자성의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중구는 자신의 마지막을 짐작한다.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를 피운 이중구는 이 영화로 유명해진 대사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라는 말을 남기고 이자성의 부하들에 의해 빌딩 아래로 추락한다. 장수기는 이자성을 제거하기 위해 따로 고용한 킬러들이 있는 곳으로 이자성을 유인했지만, 이자성은 그 길러들을 미리 포섭해 놓은 상태였고 오히려 장수기가 죽음을 당하게 된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이제 골드문의 후계 자리를 노릴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정청이 불러온 연변 킬러들은 폐공사장 실내낚시터에 혼자 있던 강 과장을 살해하고, 출근 중인 고 국장도 습격하여 살해한다. 이로써 경찰 자료가 해킹되어 삭제된 이후, 이자성의 경찰 신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도 모두 없어진 셈이다.

 

골드문의 회장을 선출하는 이사회 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고  이자성은 부하들의 도열 하에 천천히 걸어 들어가 마침내 회장직에 앉는다. 이사회가 끝난 뒤, 회장실 의자에 깊숙이 앉은 자성은 담배를 피우며 창 밖을 응시한다. 그리고 남은 유일한 증거, 정청이 해킹한 경찰청 인사기록카드를 불에 태운다. 경찰 이자성은 죽었고, 거대 범죄기업의 완벽한 수장이 탄생한 것이다.

 

영화의 메인 카피는 ‘세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신세계’ 이다. 이자성과 정청, 그리고 강 과장이 꿈꾸던 서로 다른 신세계. 이자성이 바란 것은 위태롭고 불안한삶을 끝내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을 것이다. 강 과장은 아무리 제거해도 자꾸만 자라나는 범죄조직들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안정적으로 통제가능한 질서를 바랬던 모양이다. 정청은? 정청이 바랬던 세상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해석하기에 영화의 제목 <신세계>는 다만 이자성의 바뀐 삶, 바뀐 세계를 가리키는 듯 하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경찰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마지막에 다른 삶을 선택한다. 그가 앞으로 마주할 세상이야말로 과거와 완전히 다른 세계, 완전히 다른 삶 아닌가.

 

영화를 보면서 빠져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OST이다. 영화 <신세계>의 메인 OST이며 이자성의 테마곡이라 할 수 있는 ‘Big Sleep’ 은 무겁고 외롭다. 묵직한 저음의 연주로 시작하는 초입부는 장중하지만 연주가 진행하면서 왠지 모를 쓸쓸함과 불안함이 가득 묻어나온다. 이자성이 깊은 상념과 고민에 빠질 때, 그리고 분노와 동요를 보이는 장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면서 그러한 음악적 느낌은 이자성의 감정 상태와 변화를 정확하게 표현해준다. 비장미 가득한 이 음악은 거친 사내들의 욕망과 의리 그리고 갈등과 잘 어울리며 이 영화를 한국느와르의 수작 반열에 올려놓는데 큰 역할을 한다.

  

에필로그: 6년 전 여수

영화는 마지막으로 6년 전 여수의 부둣가를 보여준다. 아직 조직의 말단이던 시절의 정청과 이자성은 어느 횟집을 가득 채운 조직폭력배들을 단 둘이서 쳐들어간다. 싸움이 끝난 후, 온 몸이 피로 뒤범벅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는다. 정청은 여전히 이자성에게 사투리 섞인 욕설과 음담패설로 장난을 걸고, 이자성 역시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이 장면에서, 이자성이 마지막에 경찰이 아닌 '브라더'를 위한 삶을 선택하는 감정적 뿌리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